챕터01. 세계 탁구의 역사 ㅣ 생활체육 탁구 입문자를 위한 탁구학각론

1.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넷지마스터입니다 :)
생활체육 탁구 입문자를 위한 탁구학각론, 챕터 1에서는 탁구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탁구의 기원에 대해 알아본 뒤, 1900년대에 어떻게 탁구의 기틀이 마련되고 현대화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2000년대 현대 탁구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알아보겠습니다.
이번 영상은 국제탁구연맹의 탁구 역사에 대한 공식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생활체육 탁구 입문자를 위한 탁구학각론 - 챕터01. 세계 탁구의 역사 - 탁구학각론은 이미지와 영상 자료가 다수 첨부되어 있기 때문에 위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2. 탁구의 기원 (1900년 전후)


탁구는 1800년대 후반 영국 빅토리아 시대 때 다른 스포츠들과 마찬가지로 사교적 오락거리로 시작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임시방편으로 샴페인 코르크를 공으로, 시가 상자를 라켓으로, 책을 네트로, 식탁을 탁구대로 사용했는데요. 이런 방식의 초창기 탁구는 배드민턴이나 테니스와 마찬가지로 Jeu de Paume(주 드 포메)로 알려진 중세 테니스 방식에서 출발했고, 상류층의 식후 오락거리나 비 오는 날 테니스를 대신해서 하는 테니스의 테이블 버전으로 성행했습니다. 탁구 연구가 Alan Duke(앨런 듀크)는 Ralph Slazenger(랄프 슬레이젠저)가 1883년에 낸 그물망에 대한 영국 특허를 발견했는데요. 이 특허는 당구대나 식탁에 그물망을 걸쳐 실내에서 테니스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연대 측정이 가능한 최초의 탁구 기록으로 보고 있습니다.

 

탁구가 본격적으로 틀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각종 탁구 게임 세트들이 출시되면서부터입니다.
가장 오래된 게임 세트는 1890년 영국에서 David Foster(데이비드 포스터)가 특허받은 Parlour Table Games(팔러 테이블 게임즈)입니다. 팔러 테이블 게임즈는 스트링이 있는 라켓, 30mm 천으로 덮인 고무공, 그리고 테이블 주변에 설치하는 목재 울타리, 양쪽의 큰 사이드 네트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팔러 테이블 게임즈가 인기를 얻으면서 다른 게임 제조업체들도 테니스의 실내 버전을 상용화하기 위해 보드 주사위, 카드, 라켓과 풍선 등을 이용한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고, 제각기 인기를 얻으면서 탁구와 관련된 다양한 명칭과 규칙들이 생겨났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날의 탁구 명칭인 Table Tennis가 공식적으로 세상에 나온 것은 1885년 10월 9일의 일입니다.


과거에 Table Tennis란 명칭을 처음 만든 사람이 누군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요. 탁구 연구가 앨런 듀크에 따르면, 처음에 Devonshire(데본셔)라는 인물이 1885년 "Table Tennis"에 대한 특허를 잠정적으로 받았으나 1887년에 폐기되었습니다. 게다가 데본셔가 탁구 게임 제작에 기여했다는 증거가 없고, 1901년 The Echo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데본셔 본인이 고시마 게임을 만든 John Jaques(존 자크)가 Table Tennis란 이름과 규칙을 발명했다고 말한 것이 발견되면서 논란은 일단락되었습니다. 다만, 학계에서는 존 자크가 데본셔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구입한 아이디어가 1891년에 출시한 존 자크의 Gossima(고시마) 게임의 기초가 되었다는 시나리오를 유력하게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Table Tennis의 근간이 된 고시마는 셔틀콕 게임의 드럼 스타일의 battledores(배틀도어)를 차용하고, 50mm 코르크 공을 사용했으며, 테이블 아래에 벨트와 같은 스트랩으로 고정된 30cm 높이의 그물망을 사용했습니다.


한편 고시마는 고무공 버전과 코르크공 버전이 있었는데요. 고무공은 너무 강한 바운스를 가지고 있었고, 코르크공은 너무 약한 바운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존 자크가 1890년대 내내 고무공과 코르크공 버전의 고시마를 계속 광고했지만 인기를 얻는데 실패했습니다. 이후 1900(1898~1901)년에 이상적인 바운스를 보이는 셀룰로이드 공이 James Gibb(제임스 깁)에 의해 게임에 도입되고, 1902년 E.C.Goode(구드)에 의해 나무판 위에 돌기나 홈이 있는 얇은 고무를 붙여 만든 라켓이 도입되면서 오늘날의 탁구와 유사한 형태가 나타납니다.

 


3. 탁구 발전의 초석 (1900~26년)


1900년 셀룰로이드 공이 도입되면서부터 핑퐁이라는 명칭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핑퐁이라는 이름이 유행한 이유는 라켓과 셀룰로이드 공이 튕기는 소리가 1884년 Harry Dacre(해리 데이커)의 노래에 나오는 Ping Pong(핑퐁)이라는 소리와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핑퐁 소리는 지금도 당시 라켓을 사용하면 들을 수 있습니다. 핑퐁이라는 명칭이 인기를 얻자 존 자크는 고시마의 이름을 "Gossima or Ping Pong"으로 바꿨고, 최종적으로 고시마라는 이름을 삭제했습니다. 핑퐁 외에도 Whiff Waff, Pom-Pom, Pim-Pam 등의 이름으로도 불렸으나 결국 가장 인기 있어 살아남은 명칭은 Ping Pong과 Table Tennis 두 개입니다.

 

두 가지의 이름 모두 인기가 있었기에 Table Tennis 협회와 Ping Pong 협회가 1901년 런던에서 따로 결성되고, 각각 경기 규칙이 달라지면서 몇몇 문제가 생기긴 했으나 결국 1903년에 두 협회가 통합되었습니다. 하지만 1904년 영국에서는 점차 탁구 열풍이 사라지고 동유럽에서만 인기가 지속되는 상황이 유지되다가 17년 뒤인 1921년에 와서야 탁구 협회가 영국에 창설되고, 규칙은 다양했지만 영국과 유럽 각지에서 대회들이 부활하면서 1922년 종주국인 영국에서 게임 표준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이후 1926년 당시 독일탁구협회장이었던 레만 박사가 제창하여 오스트리아, 서독, 헝가리 등의 대표들이 베를린에 모여 ITTF 국제탁구연맹을 결성하였고, 영국 런던에서 첫 세계선수권 대회가 열리면서 Table Tennis라는 이름이 공식 명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1926년에 Ivor Montagu (ENG, 아이보르 몬태규) 회장이 선출되고, 국제탁구연맹 헌법과 첫 번째 표준화된 법률 세트가 채택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탁구가 발전해 나갈 초석이 마련되었습니다.

 


4. 하드 러버 라켓의 유행과 유럽 탁구 우위의 시대 (1920~50년)


1920년에서 1950년까지는 스펀지 없이 돌기가 돌출된 탑시트만 있는 오소독스 러버를 사용한 하드 러버 라켓이 주로 사용되었으며, 이 시기에는 당연하게도 탁구 보급이 늦은 아시아 보다는 유럽이 강세를 보였습니다. 예를 들면 1926년부터 1931년까지 헝가리의 Maria Mednayanszky(마리아 메드난스키) 선수가 세계 선수권에서 5연패를 달성하고 총 18개의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1930년부터 1935년 사이에는 헝가리의 Viktor Barna(빅터 바르나) 선수가 세계 선수권에서 단식을 다섯 번 우승하고, 총 22개의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유럽 강세의 분위기 속에서 1937년에 탁구 규칙에 첫 변화가 일어납니다. 1936년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서 열린 제10회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역사상 가장 긴 랠리가 펼쳐졌는데요. Ehrlich(에를리히) 선수와 Paneth Farkas(페네트 파르카스) 선수의 수비적인 스타일로 인해 경기 시작 후 첫 포인트를 내는데 2시간 12분이 걸렸습니다. 1937년 국제탁구연맹은 이를 문제 삼아 네트를 17.2cm에서 15.25cm로 낮추어 공격적인 스타일을 유도했고 경기 시간제한을 강화했습니다.

 

이후 탁구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1939년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유럽 외 지역에서 처음으로 세계 선수권 대회가 열렸으며, 1940년에서 1946년까지는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국제탁구연맹은 활동을 중단하고 세계 선수권 대회를 개최하지 않았습니다.

 

전쟁 종식 후 1947년부터 활동을 재개한 이후, 1950년부터 1955년까지 Angelica Rozeanu-adelstein(안젤리카 로제아누-아델슈타인) 선수가 세계 선수권에서 6연패를 달성했으나, 점차 아시아의 강세로 현재까지 여자 단식 우승을 차지한 마지막 비아시아인이 되었습니다.

 


5. 소프트 러버 라켓의 유행과 아시아 탁구 우위의 시대 (1950~70년)

 

최초의 러버인 오소독스 러버 이후에도 다양한 종류의 러버들이 개발되어 왔지만 1950년대 전까진 탑시트만 있는 오소독스 러버가 대세였습니다. 하지만 1950년에 들어 스펀지를 사용하여 부드럽다는 의미인 소프트 러버들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아시아 탁구의 강세가 시작됩니다. (소프트 러버에는 오소독스 러버에 스펀지를 붙인 핌플 아웃 러버, 돌기를 스펀지 쪽으로 붙인 인버티드 러버 즉 핌플 인 러버, 단단한 스펀지와 부드러운 스펀지 두장을 겹친 스펀지 러버 등이 있습니다.)

 

1952년 아시아 연맹 출범 후 인도 봄베이에서 아시아 최초로 개최된 제19회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일본의 사토 히로지 선수가 두꺼운 스펀지로 덮인 라켓으로 최초의 아시아인 세계 챔피언이 되면서 소프트 러버는 빛을 발합니다. 이후 1954년 런던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도 일본의 오기무라 이치로 선수가 겉면은 단단하고 안쪽은 부드러운 두장의 스펀지를 겹친 7mm가 넘는 러버를 사용하여 우승하였는데, 공격은 강력했으나 소리가 크지 않아 사람들은 사일런트 스매시라 불렀습니다. 1954년에 이어 1955년의 세계선수권에서도 일본의 다나카 토시아키 선수가 스펀지 러버가 아닌 고무 탑시트와 스펀지가 결합된 핌플 인 러버로 우승하면서 핌플 인 러버도 주목을 받게 됩니다. (당시에는 러버의 공인이나 두께에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과 달리 매우 두꺼운 러버였습니다.)

 

스펀지 러버와 두꺼운 핌플 인 러버로 일본이 탁구계를 점령하자 1959년 독일 도르트문트 세계선수권에서 국제탁구연맹은 타구음이 없는 스펀지 러버를 금지시키고, 러버 두께 제한을 4mm 이하로 두는 라켓 표준화법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규정으로 일본의 기세는 한층 꺾였으나 1953년부터 국제대회에 참가한 핌플 아웃 러버를 사용하는 중국 선수들의 전성기로 이어졌고, 1959년 롱궈톈 선수가 중국인 최초로 세계 챔피언이 되면서 아시아의 강세를 계속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1963년 중국에서 롱핌플 러버의 원형이 되는 러버가 탄생했습니다. 이전까지는 핌플 아웃 러버의 돌기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숏핌플과 롱핌플을 특별히 구별하진 않았으나 롱핌플 특유의 리버설 성질과 우블링 성질이 두각을 보이면서 돌기가 짧은 숏핌플 러버와 구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외 주요 사건)

국제탁구연맹은 1957년부터 세계선수권대회를 2년 주기로 변경하였으며, 1960년 로마에서 열린 제1회 패럴림픽에 탁구가 포함되었습니다.

 


6. 스피드글루 및  핌플 인 러버의 발전과 유럽 탁구의 재도약 (1970-80)

 

1967년에 최초로 탑시트에 합성 고무를 섞은 버터플라이의 스라이버(스리버)와 1969년 야사카의 마크V(마크파이브)라는 핌플 인 러버가 출시되면서 천연고무만 사용한 이전 러버들 대비 공의 스피드와 회전력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1971년 마크V를 사용한 스웨덴의 Stellan Bengtsson(스텔란 벵트손)이 남자 단식 우승을 차지했고, 1975년에는 헝가리의 Istvan Jonyer(요니에르) 선수가 스라이버를 사용하여 세계 챔피언이 되면서 유럽의 올라운드와 파워가 전진속공의 중국 탁구를 이겨냅니다.

 

또한 1978년 헝가리의 Tibor Klampar(클람파르) 선수는 시합 시작 전 급하게 러버를 붙였는데 러버에서 금속성의 높은 소리와 함께 스피드와 회전이 늘어나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는데요. 고무 성분보다는 저휘발성 용매의 비율이 높은 접착제를 사용하여 스펀지가 젖은 상태로 경기를 하면 트램펄린 효과가 일어나 일정 시간 동안 스피드와 회전이 증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점차 다른 유럽 선수들도 스피드글루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잠시나마 유럽 탁구가 중국 탁구에 위위를 점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러나 중국 또한 스피드글루를 사용하면서, 1981년 유고슬라비아 노바사드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중국 선수들이 7개의 금메달을 모두 차지하면서 중국의 세계 탁구 지배가 확고해집니다.

 

핌플 인 러버는 스라이버, 마크V와 같은 고탄성 고마찰 러버 외에도 안티스핀 러버가 1971년에 등장했고, 중국의 시엔팅이 1973년 세계 챔피언이 되면서 점착 러버의 존재감도 부각되었습니다. 특히 안티스핀 러버는 류궈량 이전 총감독으로 유명한 차이전화 선수가 한쪽은 일반 핌플 인 러버, 다른 한쪽은 안티러버를 같은 검정 색상으로 사용하는 동시에, 임팩트 순간 공이 어떤 면에 맞는지 모르도록 몸으로 가리는 플레이로 엄청난 성적을 냈습니다. 결국 국제탁구연맹은 1983년 다른 색상의 러버를 붙여야 한다는 규정과 함께 몸으로 서비스를 가리면 안 된다는 규정을 발표했습니다. 이 규정의 영향으로 안티스핀 러버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그 자리를 롱핌플 러버가 차지하게 됩니다.

 

그 외 주요 사건)

- 1973년 독일 하노버에서 제1회 세계 대학 선수권 대회가 열렸습니다.

- 1977년 ITTF는 국제 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공식 인정 선언을 받았습니다.

- 1979년 영국 스토크 맨더빌에서 제1회 유럽 장애인 선수권 대회(휠체어 선수)가 열렸습니다.

- 1980년 홍콩에서 첫 탁구 월드컵이 열렸습니다.

 


7. 탁구의 현대화 (1980년~현재)

 

1980년대에 들어 탁구는 올림픽 공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현대화의 길을 걷습니다. 우선 1977년 국제탁구연맹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공식 인정을 받았고, 1988년 대한민국 서울 올림픽에서 탁구가 처음으로 올림픽 종목으로 도입되었습니다. 이때 서울 올림픽에서 한국인인 유남규 선수가 최초의 올림픽 단식 금메달리스트가 되었습니다.

 

이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Jan-Ove Waldner(얀오베 발드네르 혹은 발트너) 선수가 유럽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면서, 올림픽, 세계선수권, 월드컵 세 개의 메이저 대회를 우승한 최초의 탁구 그랜드슬래머가 됩니다. 하지만 1995년 중국 톈진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역대 그랜드슬래머인 공링후이와 류궈량을 필두로 한 중국이 단식 금은동은 물론 7종목에서 금메달을 휩쓸면서 중국의 만리장성 탁구를 굳건히 했습니다.

 

1996년에는 ITTF 프로 투어가 시작되면서 전 세계에서 대회가 개최되기 시작했고, 중계스포츠에 적합하도록 국제탁구연맹은 탁구 규정을 개선하게 됩니다. 우선 첫째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 끝난 후 탁구공 크기를 40mm로 늘렸습니다. 38mm에서 40mm로 탁구공이 커지면서 텔레비전 화면에서 공을 좀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으며, 길어진 랠리를 통해 탁구에 대한 시청자들의 흥미를 높이고자 했습니다.

 

둘째로 2001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부터 게임 시스템을 변경하였습니다. 서브권을 5개에서 2개로 줄여 과도한 서브 득점으로 인해 경기가 단조로워지는 것을 방지했고, 게임 스코어를 21점에서 11점으로 줄여 경기의 속도감을 늘렸습니다.

규정 변경의 목적은 중계 프로스포츠로서 적합하게 바꾸는 것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의 강세를 막아보려는 견해도 존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리친, 공링후이, 마린 선수의 활약으로 오사카 세계선수권에서도 중국이 7개의 금메달을 모두 획득하면서 여전히 만리장성의 견고함을 보여줬습니다. 이후 1년 뒤 2002년 국제탁구연맹은 서브의 영향력을 더 줄이기 위해 프리핸드로 서브 임팩트를 가리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이런 경기 규정 외에도 현대 탁구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이 있는데 바로 스피드글루의 전면 금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스피드글루는 1978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톨루엔, 벤젠과 같은 유독성 용매제가 사용되어 선수들의 건강을 해치고,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어 탁구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청소년들이 스피드 글루를 본드 흡입하듯 환각제로 사용하는 경우도 발생하면서 사회적 문제로도 대두되었습니다. 따라서 1992년 오기무라 이치로 국제탁구연맹 회장의 강력한 주장에 의하여 스피드 글루가 금지되었으나, 이후 독성이 없는 용매를 사용한 공인 스피드 글루만 판매 및 사용한다는 조건 아래 재허용 되었습니다.;하지만 여전히 휘발성 용매는 VOC(Volatile Organic Compounds)가 검출되어 건강에 해로웠기 때문에 2005년 상하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007년부터 스피드글루를 금지하는 것을 결정했다가 이후 최종 금지일이 2008년 9월로 변경되었습니다.

 

스피드글루의 금지가 예견되면서 용품 제도사들은 스피드글루 사용을 전제한 러버들을 대체하는 스피드글루 효과 내장 러버들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피드글루 금지 이후 또다시 한번 탁구계를 뒤흔드는 대격변이 일어나는데 바로 탁구공 소재의 변화입니다.

2014년 탁구공 소재는 셀룰로이드의 인화성으로 인해 항공 운송이 어려워지면서 플라스틱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플라스틱 안에서도 여러 변화가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탁구학개론 챕터 04에서 말씀드렸기 때문에 소재 변경의 영향만 말하자면, 셀룰로이드 대비 회전량 및 파워와 테이블 바운드 후의 변화가 줄어들어, 포핸드 파워 드라이브를 주력으로 삼는 일본식 펜홀더나 중후진 회전 위주의 올라운드 전형은 사장되었으며, 구질 변화를 중요시하는 수비수 또한 불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회전력을 높이고 전진에서 유리하기 위해 중국식 고경도 점착 러버 사용이 더욱 각광을 받게 되었고, 탄성이 부족한 점착 러버 특성상 자연스레 부스팅 후처리가 필수적인 요소로 따라다니게 되었습니다. 2024년 현재에도 과거부터 점착 러버를 계속 사용해 온 중국은 체계적인 선수 육성 시스템과 인프라를 기반으로 탁구 최강국의 위치를 더욱 굳건히 하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마롱 선수가 그랜드 슬램 달성 이후 2연속 올림픽 단식 금메달을 획득하며 탁구계 GOAT(Greatest Of All Time)라는 칭호를 받음과 동시에 중국 탁구의 강함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으며, 지금도 판젠동, 왕추친, 리앙지쿤 등의 걸출한 선수들은 물론, 린시동과 같은 무서운 신예들도 계속해서 배출하고 있어 앞으로도 당분간은 다른 국가들이 중국 탁구의 만리장성을 무너뜨리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 외 주요 사건)

- 1982년 스웨덴 예테보르에서 제1회 세계 재향 군인 선수권 대회가 열렸습니다.

- 1982년 영국 스토크 맨더빌에서 제1회 세계 장애인 선수권 대회가 열렸습니다.

- 1985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제1회 유럽 청소년 선수권 대회가 열렸습니다.

- 1991년 일본 자바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이 우승했습니다.

- 2002년에 ITTF 세계 주니어 서킷(U18) 및 세계 사관생도 챌린지(U15 대륙 팀 대회)가 실시되었습니다.

- 2003년 칠에 산티아고에서 제1회 ITTF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가 열렸습니다.

- 2003년에 세계선수권대회가 개인 종목과 팀 종목으로 분리되었으며 격년으로 개최되는 것으로 변경되었습니다.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기간 동안 탁구의 텔레비전 시청 인기도는 모든 스포츠 중 5위를 차지했습니다.

- 2005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중국이 5개의 금메달을 모두 획득했습니다.

- 2006년 독일 브레멘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중국 선수들이 단체전에서 금메달 2개를 모두 획득했습니다.

- 2007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열린 2007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중국이 5개의 금메달을 모두 획득했습니다.

- 2007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에서 탁구가 의무 종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 2008년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세계 팀 선수권 대회에서 중국이 단체전을 모두 우승했습니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이 금메달을 모두 획득했습니다.

- 2010년 탁구는 제1회 청소년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 2012년 중국은 런던 올림픽에서 모든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역대 7번의 올림픽에서 28개의 금메달 중 24개를 획득했습니다.

-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참가하면서 페르손, 프리모라크, 셰이브 선수는 7번의 올림픽에 모두 참가했습니다.

- 2016년 세계선수권대회 및 올림픽에서 플라스틱 공이 사용되었습니다.

-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중국이 모든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역대 8번의 올림픽의 32개 금메달 중 총 28개를 획득했습니다.

 


8. 마치며

 

탁구는 지금도 발전하며 변해가고 있습니다.

국제탁구연맹은 2019년 자회사인 WTT를 설립하여 탁구를 보다 더 상업적으로 대중적인 스포츠로 발전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다양한 탁구 용품 제조사들이 부스팅과 같은 후처리가 없어도 만족할만한 성능의 러버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중국 탁구가 압도적으로 세계 탁구를 지배하고 있지만 선수들의 수준이 상향평준화되고 있기에 중국을 위협하는 선수들이 더욱 많이 등장할 거라 기대합니다.

 

탁구의 역사를 여러 측면을 아울러 관통하다 보니 규정, 러버, 블레이드 등의 세부적인 요소들의 발전과정을 세세히 다루지 못했습니다. 다른 챕터에서 세부적인 사항들의 발전사를 다뤄보겠습니다.